■
스마트폰 예배당
덜컹이는 전동차 안, 이곳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지하 예배당이다. 각기 다른 얼굴과 복장을 한 신도들이 앉아 있지만, 자세는 하나다.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은 모아 앞을 응시한다. 시선 끝에는 경전 대신 스마트폰이 있다. 웃음도, 탄식도, 심지어 분노도 모두 작은 화면 안에서 펼쳐진다. 눈을 감고 있는 이는 단순한 명상가가 아니다. 그는 노인의 기척을 감지한 수행자다. 이윽고 앞에 노인이 서자 눈을 지그시 감고 내면의 세계로 깊이 침잠한다. “나는 지금 없다”는 무언의 주문과 함께.
예전 같으면 삼강오륜이 어른거렸겠지만, 이제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우리의 도덕이다. 남을 배려하기보단, 이어폰 속 유튜버의 설교가 더 시급하다. ‘구독과 좋아요’는 현대인의 새로운 효와 충이다.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양보할 줄 모르게 된 것이다. 눈과 귀는 스마트폰에 점령당했고, 마음은 그 안의 세상에 귀속됐다.
이 풍경 속에서 진짜 노인은 누구일까. 앞에 선 지팡이 짚은 사람일까, 아니면 자리를 지킨 채 현실을 외면한 청년일까. 스마트폰은 우리를 연결해 주는 도구가 아니라, 각자의 세상을 혼자 살아가게 만드는 벽이 되었다. 지하철은 움직이지만, 우리의 시선은 고정되어 있다. 그렇게 오늘도 지하철 한 칸은 조용히, 그러나 묵직한 풍자로 도시를 달린다.
ㅡ 청람
'청람의 생각, 생각,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하철은 나의 글방이다 (0) | 2025.04.09 |
---|---|
내 제자가 소방관입니다 (0) | 2025.04.09 |
다시 피어나는 오늘 (0) | 2025.04.07 |
파면 이후, 성찰과 통합의 시간 (0) | 2025.04.07 |
시계 초침 소리 (0) | 2025.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