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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나면 모두가 달아난다. 사람도, 짐승도, 본능적으로 생명을 피신시키려 한다. 그러나 모두가 도망치는 그 순간, 불길을 향해 거침없이 뛰어드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소방관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남의 생명을 위해 한걸음 다가서는 이들. 누구보다 용기 있는 이들이다.
내게는 그런 이 중 한 사람이 제자다. 소중한 제자가 이제는 타인의 생명을 지키는 소방관이 되어 있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든든하고, 가슴 깊이 자랑스럽다. 누군가는 직업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소명을 살아간다. 내 제자는 후자다. 불길 앞에서 물러서지 않고, 뜨거운 현장으로 들어가는 그 아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훈련과 체력, 기술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사람을 향한 깊은 사랑,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면 절대 설 수 없는 자리다.
뉴스에서 화재 소식을 접할 때마다 제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거친 불길 속에서도 어김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그 모습이 눈에 밟힌다. 밤늦게까지, 주말도 없이, 위험을 마주해야 하는 그 삶이 얼마나 고단할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기도한다. 늘 안전하기를, 무사히 돌아오기를, 그리고 그가 살린 생명만큼 축복이 함께하길 간절히 바란다.
소방관이라는 이름은 단지 직업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곧 누군가의 삶을 지켜주는 방패요, 희망이다. 불이 나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그들은 인간의 가능성과 선의를 증명해 보인다. 그리고 그런 소방관이 내 제자라는 사실이 나를 다시 한 번 고개 숙이게 만든다. 내가 가르친 것은 몇 줄의 지식이었지만, 그 아이는 삶으로 진짜 가치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
세상엔 수많은 직업이 있고, 그 직업마다 나름의 무게가 있다. 그러나 모든 직업이 사람의 생명을 지키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 제자가 선택한 그 길은 참으로 숭고하다. 그의 땀과 헌신은 누군가의 새벽을 지켜주고, 그가 흘린 눈물은 누군가의 생명을 이어준다.
오늘도 불길 앞에 선 그 제자가 안전하게 돌아오기를, 그의 손끝에서 많은 생명이 다시 살아나기를 마음 다해 기도한다. 그가 있어 이 세상은 분명 조금 더 따뜻하다.
그리고 나는 말하고 싶다.
"내 제자가 소방관입니다.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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