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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의 생각, 생각, 생각

쓰레기도 보물이다

by 청람지기 2025. 4. 7.



 

 

 

 

              쓰레기도 보물이다

 

 

 


아파트 분리수거장 한켠, 다리가 부러진 낡은 나무 의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벗겨진 페인트, 닳아버린 나뭇결. 그러나 그 안에는 누군가의 어린 시절, 아버지 무릎 위의 포근함, 담요 냄새, 울며 시험지를 찢던 밤이 고요히 잠들어 있는 듯했다. 그날 이후, 버려진 것들 속에서 삶의 자취를 읽는 일이 시작되었다.

길가에 깨진 유리 조각 하나, 햇살을 받아 별처럼 반짝이고. 낡은 구두 한 켤레, 먼 길을 걸어온 사람의 흔적을 남긴다. 플라스틱 뚜껑 하나에도 병상 곁에서 마신 생명의 물이 스며 있다. ‘쓸모없음’이라는 말은 인간의 오만이 빚은 허상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무엇이든 쓰고 버리는 이분법으로 나뉘지만, 자연은 그런 경계를 모른다. 낙엽은 흙이 되고, 죽은 동물은 또 다른 생명을 살린다. 자연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버린 것을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찡그린다.

가난하던 시절, 껍질 벗긴 무와 파뿌리로 끓여낸 국물 한 그릇이 따뜻한 보물이었다. 부엌의 자투리 재료들은 손끝에서 다시 태어나고, 비닐은 문풍지가 되었으며, 고장 난 시계는 벽의 장식이 되었다. 버려진 것들은 생존의 전략이었고, 조용한 사랑의 언어였다.

지금도 버려진 편지를 읽고, 찢긴 사진 조각을 맞추며 잊힌 기억들을 복원하는 일이 이어진다. 누군가의 기억에서조차 사라진 것들이 조용히 속삭인다. “나도 한때는 사랑받았다.” 그 앞에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쓰레기란, 다만 시간이 만든 낡은 아름다움일 뿐이다. 필요 없음이 아니라, 제 몫의 시간을 다한 존재들이다.

진짜 보물은 반짝이지 않는다. 손때 묻은 찻잔, 오래 쓴 연필, 한쪽 구겨진 메모지 속에 숨어 있다. 삶은 매일 무언가를 버리는 과정이지만, 그것들이 사라지는 법은 없다. 누군가는 그것을 다시 주워 쓰고, 또 누군가는 그 안에서 감동을 길어 올린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위에 시를 쓴다.

쓰레기는 말없이 가르친다. 낮은 곳으로, 잊힌 자리로, 다시 시작하는 곳으로 향하라고. 그러니 오늘도 조용히 되뇐다. “쓰레기도, 보물이다.” 이 말이 얼마나 역설적인지는 분명하다. 그러나 모든 진리는 처음엔 웃음거리가 된다. 그리고 결국, 삶의 본질이 된다.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