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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의 생각, 생각, 생각

쓸모없는 것의 쓸모

by 청람지기 2025. 3. 31.



 

 

 






                       쓸모없는 것의 쓸모




“스승님, 쓸모없는 건 왜 이렇게 많은 걸까요?”
스승은 뜨끈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빙긋이 웃었다.
 “달삼아, 무엇이 쓸모없다고 생각하느냐?”
“글쎄요, 낙엽이나 잡초, 깨진 그릇 같은 것들이요. 사람들이 다 치우거나 버리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달삼아, 그런 것들이 진짜 쓸모없을까?”

달삼은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스승은 마당에 떨어진 낙엽을 하나 주워 보이며 말했다.
“이 낙엽도 언젠간 땅으로 스며들어 흙이 되고, 그 흙은 또 새로운 생명을 키우지. 겉보기에 쓰레기처럼 보여도 자연은 결코 낭비하지 않는단다.”

낙엽은 가을이면 어김없이 떨어진다. 사람들은 그것을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며 빗자루를 들고 치우기에 바쁘다. 땅 위에 쌓인 낙엽은 곤충과 미생물의 보금자리가 되고, 부식되며 땅을 비옥하게 만든다. 우리가 보기엔 쓸모없어 보여도 자연의 순환 안에서는 꼭 필요한 역할을 한다.

“그럼 스승님, 깨진 그릇은요? 그건 쓸모가 없지 않나요?”
달삼의 물음에 스승은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로만 보면 그래 보이지. 그런데 일본에는 * ‘킨츠기’라는 수리법이 있단다.”
“킨…츠기요?”
“응. 금이나 은으로 깨진 자리를 이어 붙이는 전통 방식이지. 깨진 흔적을 감추는 게 아니라 오히려 드러내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거야.”

달삼은 신기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들었다.
“상처를 감추지 않고 드러낸다… 멋지네요.”
“그렇지. 사람도 마찬가지야. 실패와 실수, 상처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 그런 일들을 통해 우리는 더 깊어지고 단단해진단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실수나 실패를 쓸모없는 과거로 여긴다.
 그 경험들이야말로 진짜 삶의 스승이 되어준다. 실수는 다음에 더 잘하기 위한 발판이 되고, 실패는 새로운 길을 찾게 해 준다. 마음 아픈 일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마음을 기르게 한다. 지나고 나면 그것들이 외려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문학이나 예술도 그런 거 아니겠어요, 스승님? 딱히 실용적인 건 아닌데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잖아요.”
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렇지. 노을을 바라보며 괜히 눈물이 나는 것도, 피었다가 지는 꽃을 보며 덧없음을 느끼는 것도, 다 감성이지. 이런 것들이 삶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거야.”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돌아가고, 사람들은 무엇이 얼마나 유용한지를 따지며 살아간다.
정말 중요한 것들은 실용성을 따지지 않는다. 예술, 자연, 감정, 추억… 이런 것들은 효율과는 거리가 멀지만 인간의 마음을 살찌우는 소중한 요소들이다.

달삼은 마당 귀퉁이에 자라고 있는 잡초를 가리켰다.
“그럼 저건요? 저 잡초는 다들 보기 싫다고 뽑아버리는데요.”
스승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잡초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 녀석들도 의미가 있단다. 척박한 땅에서도 꿋꿋하게 자라지. 흙을 덮고, 벌레와 새들의 쉼터가 되기도 해. 사람 눈에는 방해물처럼 보여도 자연의 눈으로 보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지.”

달삼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잡초를 바라보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풀잎 하나에도 생명은 깃들어 있었다.
스승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달삼아, 쓸모없음은 단지 우리가 미처 그 가치를 보지 못하는 상태일 뿐이야. 넓게 보고, 깊이 보면 모든 것에는 다 나름의 자리가 있단다.”

쓸모없다고 여긴 것들이 사실은 삶의 본질을 일깨워준다. 존재 그 자체로 이미 의미 있는 것들. 낙엽처럼, 깨진 도자기처럼, 잡초처럼, 그리고 우리 안의 수많은 기억과 상처들까지도. 그것들은 다 지나온 삶의 흔적이며, 다음 삶을 위한 밑거름이다.

달삼은 스승과의 대화를 곱씹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쓸모없다는 건, 어쩌면 다른 쓸모를 아직 못 찾았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네요.”
스승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걸 아는 것부터가 진짜 어른이 되는 길이지.”









* 킨츠기 또는 킨츠쿠로이는 일본에서 유래한 도자기 수리 기법으로 깨진 도자기 조각을 밀가루 풀이나
옻칠로 이어 붙이고 깨진 선을 따라 금가루나 은가루로 장식해 아름답게 장식 및 보수, 수리하는 공예이다.

 이것만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2~3시간은 기본이며 10시간 넘게 작업하는 경우도 있다. 킨츠키는 깨진 도자기를 버리지 않고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일본의 와비사비 정신을 반영한 킨츠기 자체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뿐만 아니라 중국, 한국, 베트남 등 다른 나라에서 제조된 도자기에도 구분 없이
사용되었다.

어떤 물건을 오래 사용하여 못 쓰게 될지라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모되거나 부서지는 것도 하나의 역사
로받아들이고 계속 사용한다는 점에서 철학적인 차이점을 보인다.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