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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의 생각, 생각, 생각

봄은 여름을 꿈꾼다

by 청람지기 2025. 4. 9.






             봄은 여름을 꿈꾼다





봄은 피어남의 계절이다. 모든 생명이 동면을 끝내고 자신을 밖으로 드러내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봄은 그 자체로 완성되지 않는다. 봄은 늘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고, 그 무언가는 바로 여름이다. 봄이 그토록 온몸을 다해 꽃을 피우고 새순을 밀어 올리는 이유는 언젠가 태양이 머리 위에 정점에 머물고 생명이 그 절정을 이루는 여름이 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봄은 여름을 꿈꾸며 자신을 준비한다. 이때 ‘꿈꾼다’는 것은 단순한 희망의 표명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 전체가 어떤 이상을 향해 자발적으로 전진하고 있음을 뜻한다.

봄은 자신이 여름이 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여름을 향해 존재를 소모한다. 꽃은 지고 잎은 무성해지며 결국 자신의 자리를 다음 계절에 내어준다. 봄은 그래서 겸허하다. 자기를 주인공으로 삼지 않기에 찬란하고, 오히려 지나가는 자리일 뿐이기에 의미 있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봄은 ‘되는 존재’(becoming)의 상징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나 끊임없이 무엇이 되고자 하는 운동성. 바로 그 과정 속에서 삶은 의미를 얻는다. 봄이 여름을 꿈꾼다는 말은, 결국 인간 존재도 스스로의 여름을 향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봄과 같다는 통찰로 확장된다.

그러나 이 꿈은 단순한 진보의 신화가 아니다. 여름은 뜨겁고, 번성하며, 충만하지만 동시에 그 끝에 가을과 겨울이 잠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봄이 여름을 꿈꾼다는 말에는 유한성과 무상함에 대한 자각도 함께 깃들어 있다. 꽃이 피는 이유는 지기 위함이며, 초록이 진해지는 이유는 언젠가 붉게 물들기 위해서다. 봄의 꿈은 결국 소멸을 향한 아름다운 순응이자, 덧없음 속에서 빛나는 찰나의 의지다.

인간의 삶도 봄과 같다. 우리는 미래를 꿈꾸며 지금을 살아간다. 이상을 품으며 스스로를 다듬고, 다가올 계절에 의미를 부여한다. 봄이 여름을 꿈꾸듯, 인간은 자신이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를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고, 그 길 위에서 가장 깊은 존재의 기쁨을 맛본다. 봄은 그래서 우리에게 속삭인다. "너는 지금 어디를 향해 꽃을 피우고 있는가."



ㅡ 청람